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2년 6월 10일, 이순신장군은 2차 출전을 마치고 본영으로 귀환한 조선 수군함대들의 전열을 재정비하던 중 일본수군이 출몰한다는 첩보를 접하고 7월 4일 재출전하게 된다. 7월 6일 창신도에 도달한 이순신장군과 그의 부대는 경상우수사 원균의 부대와 합류하여 연합하게 되고, 7월 7일 고성 당포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조선수군은 일본군선 70여척이 견내량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견내량은 지역여건상 수심이 얕고 암초가 많아서 큰 전투선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판단을 내린 이순신장군은 전선 5~6척을 동원하여 왜선을 한산도와 미륵도 사이의 넓은 바다로 유인하게 되었다. 당시 전투의 장소인 통영 앞바다는 견내량과 달리 수심이 깊고 사방이 헤엄치기 곤란하므로 적군이 패할 경우 육지로 도망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측한 이순신장군은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적선 90여척과 적군 9,000여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게 하는데, 이 전투가 한산대첩이다. 이 전투의 결과, 일본수군은 이후 전투부터는 조선수군과의 해전을 회피하는 전술로 일관하였고, 이로 인해 한산대첩은 일본군의 수륙병진전략을 실행불가능하게 만든 전투로 평가 받고 있다. 한산대첩은 BC 480년 데미스토클레스 제독이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막강한 참략군을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 섬멸시킨 세계 최초의 대규모 해전인 살라미스해전, 1588년 영국의 하워드제독이 에스파니아 무적함대를 물리쳐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세계 해양대국으로 부상하게 되는 칼레해전, 1805년 영국의 넬슨 제독이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괴멸시켜 나폴레옹의 영국 진출을 무산시킨 트라팔카 해전과 함께 세계4대 해전이다. 세계 4대 해전 중에서도 이순신장군의 한산대첩이 가장 값진 해전으로 평가받고 있음은 세계 해전술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으며 이충무공의 해전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연전연승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일본해군은 한산해전에서 패한 이후 300여 년간 긴 침체기를 가졌다.
제50회 통영한산대첩축제
세계 4대 해전의 으뜸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62년부터 매년 8월에 통영시 일원에서 한산대첩 재현 및 전통문화행사 등을 중심으로 개최하고 있다. 2011년, 축제 50회를 맞는 통영한산대첩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망축제로 이순신장군 관련 축제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여수세계박람회가 개최되는 2012년에는 한산대첩 7갑주년(420주년)으로 세계적인 해양문화축제로 도약할 계획이다.